국가였다.
(3)한국의 역사인식 동북공정과 고대사 왜곡의 대응방안2006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백암) p30~32
ⅰ 반도사관으로 우리 역사 강역을 스스로 한반도 안으로 축소하고 있다.
ⅱ 고대 국가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조작하고 있다.(단군왕검의 웅녀 탄생 신화설, 고구려 등의 난생설, 금와설 등)
기자조선이란 중국 최초의 속국이며 여기서 부여, 고구려도 기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사 왜곡을 넘어 현재의 우리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유사시 북한에 대한 개입의 역사적 명분을 쌓는 작업의 일환일 수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려는
국가≒민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고대 사회에는 ‘민족’의 개념 혹은 ‘민족 시조 단군’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단군이 민족 개념을 확립하려는 사람들에게 ‘선택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기자와 기자조선에 대한 태도
국가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동북 공정 작업을 위해 고조선도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한다. 특히 중국은 고조선의 역사 중, 기자조선의 시기를 동북공정을 위한 근거로 사용한다. 기자조선은 중국 은나라 말기에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건국하였다고 전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고
1.필자는 과학적인 역사와 비과학적인 역사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필자는 역사를 크게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고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무수히 많은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고,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바탕으로 역사가가 재
조선ꡑ(古朝鮮)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의 이전의 옛 조선으로서의 ꡐ고조선ꡑ(BC 2333-195년)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또한 고대 아시아인들의 상징적 동물인 곰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단군신화를 고대 조선의 하느님 신앙을
단군왕검이다. 당요가 즉위한 지 50년 되던 경인년에 평양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했다. 다시 백악(白岳)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니 아사달은 또한 궁홀산(弓忽山)이라고도 하며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1천 5백 년 동안 다스리다가 중국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역사적 사실로 보고 그 증거를 찾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신화를 모두 역사적 사실로 보아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무조건 끌어올려 본다고 민족주의적 서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초의 국가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등장한 것이라면 동아시아에서 청동
단군은 1500년을 왕 노릇하고 기자(箕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기자가 활동한 은․주의 교체기는 기원전 1100년경으로 추정되는 만큼 건국 시점과 채록 시점간의 간격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물론 『삼국유사』에는 『위서(魏書)』라는 역사책과 ‘고기(古記)’라는 전부터 내려